000 - Prologue

17살, 내 고등학교 입학식을 앞두고 던전이 터졌던 곳에 네가 서 있다. 나를 제외한 가족의 무덤이기도 했다. 합동 장례식을 치렀었다.

나는 여전히 이 도시에 임시 거처를 두고 살았지만, 일부러 이곳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었다. 매년 추모를 하러 사람들이 방문하는 걸 알아도 나는 한 번도 오지 않았었다.

그런 곳을 너 때문에 오게 됐다.

계약에 따라서 자연히 종료되었어야 할 관계였는데. 1년짜리 계약이 갱신되지 못하고, 오히려 이르게 종료된 이후에도 너와 이렇게 인연이 이어질 줄은 몰랐다.

당연히 네가 그리웠다. 아쉬움 그 이상이었지만, 그래도 잘 지내고 있기를 바랐는데. 너는 아직 어리니 아무리 까다로운 체질이라도 네게 맞는 가이드가 나오리라고 믿었다.

그렇게 나를 잊었으면 했는데…….

나는 너의 얼굴과 몸통을 겨냥한 빨간색 점을 보며 손을 움켜쥐었다. 그래야 좀 덜 떨 테니까. 차갑게 식은 손은 땀으로 축축했다.

너의 뒤로 수많은 건축물 자제와 사라지지 않고 늘어져 있는 몬스터들의 사체가 보였다. 못 본 사이에 귀를 좀 많이 뚫었고, 또 자란 것 같기도 했다. 같이 지낸 짧은 시간 동안에도 키가 컸던 너였으니까 그사이 더 자란 건 당연했다.

격한 전투 때문에 가로수로 심어둔 벚꽃 나무는 때 이르게 피운 꽃들이 무색하게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바닥에 떨어진 꽃잎이 이리저리 흩날렸다. 이런 재회에 어울리지 않게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전에 너와 이곳에 왔을 때처럼, 미지근한 맥주나 마시며 재미없는 농담에도 크게 웃고 그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형.”

한참 나를 응시하고만 있던 네가, 나를 불렀다.

“돌아가요. 죽을 수도 있어요.”

그럴 수도 있겠지. 네가 준 목걸이형 아이템은 이미 부서졌고 나는 내게 여벌로 주어진 보너스 목숨을 다 썼으니까.

몬스터 사체에서는 쉼 없이 핏방울이 솟구쳤고 부서진 수도관에서도 물이 줄줄 흘렀다. 이만한 수분이면 너는 여기 모인 사람들을 다 죽일 수 있을 거다. 폭주하는 능력이 자신을 죽이고 있단 건 개의치도 않을 거다.

능력이 과다하게 분출되는지, 보랏빛이던 손의 살점이 일어나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너는 아프지도 않은 모양이다.

“이만 돌아가요. 그리고 평범하게 살아요.”

“평범하게?”

“…….”

“그럴 수 없는 거 알잖아. 이게 우리의 일상인데.”

내가 평생 부정하며 도망치려 했던 사실이었다. 돈을 모아서 이 바닥을 뜨겠다고 다짐했었다. 일평생 그것만이 목적이라고 여기며 헌터들과도 정붙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너 역시 지나가는 경력 중 하나에 불과했어야 했는데.

계획을 세우지 않는 사람들은 사람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아예 계획을 만들지 않는다고 한다. 그 말이 맞았다.

너라는 변수로 인해 나는 완전히 바뀌었다.

“형.”

내내 차갑게 굳은 표정으로 있던 네가 입술을 달싹였다. 그 입술이 떨리는 게 보였다.

“미안해요. 정말로…… 이러고 싶었던 게 아니에요.”

안다고 대답하려는 차에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부서져 있던 수도관이 아예 터지며 물을 뿜어내는 소리였다.

네가 절박한 표정으로 손을 뻗었다. 생각을 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너를 향해 달리는 순간, 뒤에서 발사 명령이 칼날처럼 떨어졌다.

001 - 1

애새끼 뒤치다꺼리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것이 올해 나의 소감이었다. 아직 가을 끝물이라 올해의 소감을 말하기엔 이르다고 할 수도 있지만, 정했다. 이게 내 소감이다.

“애새끼 뒤치다꺼리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니까.”

소리 내어 말하며 내 심사가 뒤틀렸다는 걸 최대한 어필해 보려고 했으나, 나를 헌터청으로 데려가고 있는 브로커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없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안대를 쓰고 귀마개까지 한 채 잠에 빠진 게 문제였다.

“야.”

절친한 친구였던 때도 있으나 이제는 후려치기와 허위매물로 평가가 지하를 뚫고 들어가기 직전인 승규를 서류 파일로 툭툭 치며 불렀다. 대답은 없었다.

“야. 이게 뭐야. 핏덩이잖아.”

드르렁 소리나 내고 자빠졌다. 누구는 신입 뒤치다꺼리하게 생겼는데.

자는 척인지 정말 잠든 건지 반응 없는 승규는 버려두고, 서류 파일을 다시 넘겼다. 내가 담당하게 될 헌터의 정보가 간단히 적혀 있었다.

이름은 채원우. 나이는 20세. 성별, 남성. 일단 안정화 수치 체크라는 중요한 면접이 남아 있긴 해도 정보가 지나치게 적었다. 구멍이 숭숭 난 정보를 통해 내가 상상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이를 보면 갓 각성한 헌터가 아닐까 싶다. 신입 헌터는 가르칠 것도 많고 수습할 것도 많다. 내가 그런 걸 할 때는 아니지 않나? 안 봐도 뻔한 가시밭길 미래를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다.

복수할 심산으로 승규 놈의 핸드폰에 조용히 껌을 붙였다. 일어나자마자 안대도 벗지 않고 만질 게 뻔한데, 손에 철썩 들러붙어 주면 소원이 없겠다.

뒤를 돌아봤다. 하나같이 사막 한가운데에 떨어뜨려도 잠만 잘 처잘 놈들이었다. 지금만 해도 코를 벅벅 골며 다리를 쫙 벌리고 졸고 나자빠져 있는 게 반 이상이었다.

열 명 정원인 밴에 다섯 명밖에 안 탔는데도 꽉 찬 것처럼 보였다. 그만큼 다들 한 덩치 하는 것이다. 이곳에서 나는 한 그루의 대나무와 같고 향기로운 국화와 같으며……. 그리고 또 뭐더라. 매난국죽이라고 했는데 안타깝게도 나머지 두 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그런데도 이곳에 있는 그 누구보다 이 일을 가장 오래 했을 거다. 사서 고생이라는 거다. 대체 왜, 언제까지 이 짓을 해야 하는 건지.

……사실 안다. 그것도 잘 안다. 다 돈 때문이지. 그리고 나는 이 짓을 꽤 오래 해야 할 거다.

터지라던 석유는 하나도 안 터지던 나라에서 던전은 펑펑 터지고, 그러다 보니 주거불안정성은 증가하고, 던전 발생 확률이 적은 것으로 평가되는 지역은 천정부지로 집값이 솟고.

오로지 주거안정성과 가늘고 길게 살고 싶은 내 노후를 위해서는 이 일을 하는 수밖에 없다. 더럽고 아니꼬워도 페이 하나만은 쏠쏠한 게 이 바닥이었다. 3D로도 부족해서 아마도 5D 정도는 될 것 같은데,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것 외에 D로 붙일 만한 게 뭐가 있냐고는 해도 배움이 짧은 터라 잘 모르겠다.

‘네가 지금까지 받은 페이 중 가장 높아. 네 몸값, 이제는 가이드 상위 1퍼센트 안에 들게 생겼다, 백겸아.’

그 말에 자세한 내용도 듣지 않고 홀랑 넘어간 내 잘못이지.

체념을 하며 서류 파일을 옆에 던져 놨다. 시트에 몸을 푹 파묻는 순간 보였다. 그 귀하다는 던전 부산물로 만들어 빛에 따라 색이 달리 보이는 화려한 ‘한국헌터청’ 현판을.

* * *

던전이 터진 뒤로 한국은 빠르게 대응 체계를 설립했다. 국가 번호 +82,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국말은 빨리빨리, 남들보다 늦는 건 절대 참을 수 없는 성격, 거기에 전시 국가의 장점까지.

일단 마구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들을 잡았다. 잡긴 잡는데, 던전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사상자도 많았다. 그러는 와중에 미국 기반의 제약회사 헬리오스가 나섰다.

헬리오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런 인류적 위기가 언제든 오리라고 믿고 준비해 왔습니다.”

그리고 요청하는 국가에 신속하게 팀을 파견 보냈다. 용병과 연구원들이었다.

헬리오스 소속 연구원들의 말에 따르자면, 이런 종말적 신호에 반응하여 유전자적 변형이 일어나, 보통 사람들과 분명히 다른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나타났다고 했다. 그건 세계적 현상이며 대한민국에도 존재함을 확신한다고도.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가. 태어나자마자 출생신고를 하고 성인이 되기 전 모두 주민등록을 하며, 이사를 가더라도 신고를 해야 하는 철저한 기록의 나라. 대한민국 정부는 순식간에 이능력자로 추정되는 이들을 걸러냈다.

이능력자에는 세 종류가 있었다. 아니, 뭐 세세히 들어가면 사실 엄청 많고. 하지만, 음……. 네 종류 정도라고 치자. 전문가들은 몇 종류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내 기준엔 네 종류면 충분한 것 같다.

우선 전투에 특화된 기술을 지니고 실제로 헌터청에 소속되어 던전을 공략하는 헌터가 있다. 능력을 사용할수록 체내 활동이 극단적으로 치솟으며 엄청난 고통을 겪는 헌터들을 안정시키고, 고통이 심해질수록 이성을 잃어 조절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그들의 능력을 진정시킬 가이드가 있고, 전투에는 특화되지 않았으나 던전을 공략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정신계, 혹은 에너지계 이능력자인 에스퍼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분명 민간인보다는 신체 능력이 높고 이능력으로 추정되는 특별한 재능도 있지만, 그 정도가 미미하여 지자체에서 그저 관리만 하는 이능력자들.

여기서 나는 가이드였다. 헌터와 신체적 접촉을 통해 그들을 안정시키는 존재. 뭐, 쉽게 말해 헌터 전용 안정제 같은 거.

“오늘도 헌터청은 대단하네.”

정부 산하 기관 중 가장 막내이면서 막내가 곧 실세라는 세상의 질서를 증명하는, 순식간에 중요도가 널뛰어 그에 걸맞게 매해 엄청난 예산을 받기도 하고 벌기도 한다는 헌터청 내부는 으리으리했다.

나쁜 의미로.

“햐, 또 한바탕 지랄들을 했구나.”

촌스러운 선글라스를 머리 위로 올려 쓰며 승규가 혀를 내둘렀다. 꼴에 저것도 명품이라는데, 내가 보기에는 짭보다도 못했다.

“뭔데?”

“헌터들끼리 치고받고 싸운 거지. 저거 봐라, 동상 깨졌다. 헌터청이 죽어가던 조소계를 살렸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니까.”

과연 승규의 손가락 끝에는 저게 완성품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깔끔하게 박살 난 조각상이 보였다.

“루브르에 보내면 될 것 같은데.”

“아, 거기 문 닫았어. 유리 피라미드 아래서 던전이 터졌다더라.”